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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와신상담의 뜻과 유래

by hedeos81 2022.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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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신상담의 뜻이 궁금하신가요? 와신상담은 섶나무(땔감나무) 위에 누워 자고 쓸개를 맛본다는 뜻으로,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일도 참고 견뎌낸다는 말입니다.

와신상담의 뜻과 유래 썸네일
와신상담의 뜻과 유래 썸네일

와신상담 한자풀이

(누울 와)
아래쪽으로 향하는 눈을 본뜬 글자 신(臣) + 사람 인(人) 의 합성어로 눈을 아래쪽으로 내리감고 누워서 쉼을 뜻합니다.

(섶나무 신)
풀의 초두머리(艹, 艸) + 베다의 신(新)의 합성어로 도끼로 벤 나무, 땔감나무라는 뜻입니다.

(맛볼 상)
대보다의 상(尙) + 맛있는 것을 뜻하는 지(旨)의 합성어로 맛있는 것을 혀에 대다, 맛보다라는 뜻입니다.

(쓸개 담)

사람 살과 몸의 육달월을 뜻하는 글자들 (月, 肉) + 차양의 뜻을 지닌 담(詹)의 합성어로 간장을 차양 삼아 자리한 신체의 기관인 쓸개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와신상담의 유래

인터넷에서 와신상담의 유래에 대해 찾아보면 대부분 와신(臥薪)에 대한 내용은 있는데 상담(嘗膽)에 대한 내용은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기서는 와신 편, 상담 편 이렇게 2개로 나누어서 와신상담의 유래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와신편

중국 춘추시대 시절, 서로 가깝게 위치한 오나라와 월나라는 자주 부딪히며 원수처럼 지냈습니다.

춘추시대 말기에 이르러서는 오나라의 왕 합려와 월나라의 왕 구천이 큰 싸움을 벌이게 되었는데 이 전투에서 손가락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파상풍으로 악화되어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 오나라의 왕 합려는 죽기 전에 아들인 부차를 불러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월왕 구천이 네 아버지를 죽인 일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원수를 갚아다오!”


아버지를 이어 오나라의 왕이 된 부차는 복수를 맹세했습니다. 딱딱한 장작더미를 깔고 누워자며 아버지의 유언과 그의 맹세를 잊지 않으려 했고 궁을 출입할 때마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치도록 했습니다.

“부차야, 너는 월나라 왕 구천이 네 아버지를 죽인 일을 잊었느냐?”

부차는 꾸준하게 군사를 훈련시키며 복수의 칼을 갈았습니다. 하지만 월나라의 왕 구천은 이러한 낌새를 먼저 눈치 채고 오히려 오나라로 쳐들어 왔지만 복수심에 불타는 부차와 오나라 군사에게 지고 말았습니다.

 

부차는 승기를 몰아서 월나라 수도인 회계까지 쳐들어갔고 구천과 월나라 군사들은 회계산 꼭대기까지 몰려 꼼짝달싹 하지 못한채 포위되었습니다. 결국 항복할 수밖에 없던 월나라 왕 구천은 오나라 왕 부차에게 백기를 들고 말았습니다.

“이제부터 월나라 왕의 자리를 버리고 오나라의 신하가 되겠소.”

상담편

부차는 구천의 항복을 받아들이고 자기의 노예로 삼았고 왕후와 함께 삭발시키는 등의 치욕을 주었으며, 월나라를 철저히 파괴하고 돌아갔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돌아가신 부친인 합려의 묘지기 일을 보게했습니다.

 

심지어 부차가 부친의 묘소를 찾아올 때면 말에서 타고 내리기 편하도록 몸을 구부려 인간 계단의 역할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부차가 병이 들자 조만간 병이 쾌차할 것이라고 장담하며 그의 대변까지 맛보는 등의 충성을 다하여 몸소 간호하기도 했습니다. 정말로 부차에게 충성을 다한 것일까요? 구천이 이런 일을 견딘 것은 이전에 부차가 그랬듯이 복수를 꾀하려는 속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나라의 왕 부차는 월나라의 왕이었던 구천이 보인 정성에 마음이 누그러졌는지 구천을 놓아주게 되었습니다. 고생끝에 월나라로 돌아오게된 구천은 오나라에게 당한 치욕을 갚으려고 이를 갈았습니다.

 

그는 머리맡에 쓸개를 달아 놓고 앉으나 서나, 밥을 먹거나 잠을 잘 때마다 쓰디쓴 쓸개를 맛보며 자신의 마음이 나태해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너는 지난날에 당한 회계산의 치욕을 잊었느냐?”

구천은 항상 이렇게 되뇌이며 복수를 다짐했고 여러가지 준비하며 기회를 노렸습니다.

 

부차가 더욱 교만해지도록 경국지색이라고 불리는 서시를 보냈는데 굉장히 마음에 들어한 부차는 고서산 위의 건물인 고소대를 재건축하고 자주 이 고소대로 행차하여 향락을 즐겼다고 합니다. 구천은 이런 고소대 재건축을 지원해서 오나라가 국력을 낭비하도록 부추겼습니다.

자신과 월나라를 의심하지 않도록 수시로 온갖 진귀한 조공품도 바치고, 군대도 지원해 주는 등의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구천은 이렇게 진실한 신하로 보이기 위해 꾸준하게 노력했습니다.

 

또한 그는 손수 밭을 갈았고 부인에게는 베를 짜도록 하였습니다. 고기반찬도 먹지 않았으며 백성들 곁에서 기쁨과 슬픔을  같이했고 어질고 현명한 인재를 발견하면 후하게 대접해 관리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흘러 20년이나 지났습니다. 오나라가 빈틈을 보이는 사이 구천은 월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가차 없이 쳐들어갔고 이번에는 오나라 수도 고소성을 포위해 부차에게 항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오랜숙원이었던 복수를 성공해 지난날의 치욕을 씻게되자, 부차를 귀양보내 그곳에서 여생을 마치게 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부차는 그의 호의를 뿌리치며 스스로 목을 베어 죽고 말았습니다.

 

글을 마치며

월나라왕 구천과 오나라와 부차의 이야기에서 이 와신상담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부차가 장작더미 위에 눕고 구천이 쓸개를 맛본 것처럼 어떤 상황과 환경가운데서도 와신상담의 자세로 임한다면 꼭 이루어낼 수 있다는 희망의 마음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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